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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책 리뷰

택시운전사, 가슴 아픈 실화 영화

by 삐뚜뽕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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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택시운전사 포스터

1. 택시운전사 줄거리

1980년 5월, 만섭은 사글세 10만 원이 넉 달이 밀려 집주인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1980년 5월 19일 일본, 동경 택시에서 외국인이 일본 국제 호텔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 외국인의 정체는 ARD-NDR 신문사 소속 위르켄 힌츠페터입니다. 다른 외신기자들과 대화를 나눈 뒤 한국으로 취재를 하러 떠나게 됩니다. 힌츠페터는 한국에 도착해 한국의 기자와 만나게 되고 광주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광주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비슷한 시각 만섭은 기사 식당에서 다른 택시 기사가 광주까지 외국인을 태워 가는 값으로 10만 원을 받는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바로 외국인이 기다린다는 극장 앞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떠나게 됩니다. 광주로 들어가기 위해 군인들에게 여러 번 제지당하는 상황이 있었지만, 그 상황을 잘 모면하여 결국 광주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만섭은 광주 안으로 들어간 뒤 힌츠페터가 기자임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마주친 학생 시위대를 쫓아가다가 차를 돌려 서울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던 도중 한 할머니를 태워 할머니의 막둥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힌츠페터와 학생 시위대, 그리고 광주 택시 기사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1980년 5월 20일, 광주 금난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현장을 만섭과 힌츠페터 일행은 보게 되고, 군인에게 잡힐 뻔합니다. 다행히도 도망치게 되어 힌츠페터와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차가 고장 났지만 광주 택시기사들이 도와주게 됩니다. 택시를 수리하는 하루 동안 광주 택시 기사인 태술의 집에 머무르기로 하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도중 방송국에 불이 나게 되고 만섭과 힌츠페터 일행은 방송국 앞으로 찾아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군인들과 마주치게 되고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렇게 추격전을 벌이다 힌츠페터에게 구출된 만섭은 광주를 떠나고자 새벽에 몰래 출발하게 됩니다. 그런 만섭을 발견 한 태술은 만섭이 광주에서 떠날 수 있게 도와주게 됩니다.

광주를 떠나 순천버스터미널에 도착 한 만섭은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딸의 신발을 구매하고 국수를 먹습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떠나기로 하였으나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하고 만섭은 딸에게 전화해 손님을 놓고 왔다면서 다시 광주로 향하게 됩니다.

광주로 돌아가 병원을 찾아간 만섭은 시위했던 대학생인 재식의 죽음을 보게 되고, 망연자실해 있던 힌츠페터를 이끌고 시위 현장으로 가게 됩니다. 시위 현장에서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만섭과 광주 택시기사들은 쓰러져 있는 총을 맞은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택시를 이끌고 시위 현장으로 나갑니다. 그 현장에서 만섭과 택시 기사들은 시민들을 구하게 됩니다.

그 후, 만섭과 힌츠페터는 광주를 빠져나가기로 하였으나 군에서 이를 알게 되어 검문소를 막으라고 합니다. 검문소에서 검문당하는 만섭과 힌츠페터는 중사의 도움으로 검문을 피해 광주를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뒤 쫓아온 군에 의해 위기를 당하지만 광주 택시기사들이 나타나 그들을 구해주게 되고, 서울로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탈출에 성공한 힌츠페터는 만섭에게 연락처를 알려 달라 하였지만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성냥갑에 적혀있던 사복이란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게 됩니다. 그렇게 만섭은 힌츠페터를 보내고, 2003년 3월 12일 힌츠페터는 언론상을 받기 위해 한국으로 오게 되고 만섭을 계속 찾았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고 2016년 1월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2.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 영화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전두환, 노태우 등의 육군사관학교 출신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가 중심이 된 신군부세력이 주도하였습니다. 결국 12월 12일 하극상을 통하여 그들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같은 해인 12월 21일, 최규하 대통령이 취임하였으나 신군부세력은 실권을 가져가고, 민주주의를 위한 명확한 정치 일정 제시를 거부하면서 권력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사망으로 민주화가 실현될 것으로 생각하였던 국민들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군권을 장악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난 뒤 1980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위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미;ㄴ주화 열기가 거세지자 신군부세력은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준으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일으키게 됩니다. 비상계엄령을 일으킨 신군부세력은 계엄군을 통하여 시위대는 물론이고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며 진압하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무차별적인 학살에 여러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규모가 5,000여 명으로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계엄군은 장갑차와 총까지 앞세워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5월 20일 오후 6시부터 택시와 버스 운전기사들이 모여 대형 버스와 트럭을 앞세워 금남로에 집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계엄군을 몰아내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또한 시위대가 10만 명을 넘어서게 됩니다.

5월 21일에는 광주와 외부를 연결하는 모든 전화를 계엄군은 차단시켜 광주시민들을 완전히 고립시켰습니다. 이에 더해 시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발생시킵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무장을 하고 계엄군과 공방을 펼쳤습니다.

5월 22일 아침에 광주에서는 시민군이 자치활동을 수행하였는데 주로 투쟁 목표를 재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자치 활동은 27일까지 6일간 지속되었습니다.

27일 새벽 계엄군은 탱크 등으로 외곽도로를 봉쇄하였고 그 수가 2만 5,000여 명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무장한 뒤 대대적인 무력 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5시 22분, 도청에 있던 시민군이 전원 연행되어 광주지역시 계엄군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계엄군은 7시 30분부터 밤 10시 50분까지 가택 수색을 하여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상무대로 연행하였습니다.

결국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사상자들을 내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3.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

영화를 보면서 마치 영화 속에 내내 들어가 있는 듯한 몰입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시위 현장을 생생히 나타내 주었고 배우들의 명연기 때문이었습니다. 몰입감뿐만 아니라 감정이입까지 되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그 덕분에 다시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용감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민주화를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번 늘 감사함을 느끼며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영화를 보면서 더욱더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나라면 민주화를 위해 광주 시민들과 대학생들처럼 나설 수 있을까? 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 위기를 겪을 수 있기에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그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만섭이 고민을 하더니 다시 광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만섭의 모습을 보면서 만약 나라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광주로 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만섭도 광주로 향한다면 죽을 수도 있는 고비를 넘겨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널리 전하고자 다시 광주로 들어간 것을 보면 그가 영화 초반부와는 다르게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이 마음에 울렸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아픈 역사이기에 마음도 아팠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이러한 역사를 잊히지 않게 영화로 만들어준 제작진에게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궁금하시다면 택시운전사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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